2009년 08월 16일
L.A Voices
인터넷 뉴스를 보니 미국, 일본 뽀르노 제작회사가 한국 네티즌들을 집단 고소한다고 한다.
자료실에 상습적으로 올린 헤비업로더들이 대상이라는데.
거의 다 중고등학생이지 싶은데 뜨끔한 놈들 많겠네.
나도 여기에다가 음원을(음질을 많이 떨어뜨리긴 하지만) 올리곤 하니까 완전 남일같지는 않다.
물론 놈들은 모종의 이익을 노리고 하는 짓들이고, 나는 그냥 취미로 하는 차이는 있지만.
예전에는 음악잡지나, 평론가들이 써놓은 글이나, 음악차트, 라디오를 듣고 음악에 대한 정보를 얻고 구입을 하거나, CD가게에서 재킷을 보고 구입을 하는 식이였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기껏해야 친구들한테 '야 이거 한번 들어봐 죽여준다' 는 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블로그가 생겨서 사적인 음악평이나 소감을 올리곤 하게 되었는데, 이젠 기술적으로 그 음악 자체를
올려서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들은 소감이 이렇네, 이 아티스트는 음악적 원류가 이렇네, 하는 얘기는 음원을 들려 주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우회적이고,
부수적이다. 물론 그 자체에도 다른 매력은 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음원을 올리는 이유는, 그 음악을 들었을 때 만들어지는 공간감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이 노래는 내가 고등학생 때 AFKN에서 들었던 곡이다. 그리 상업적으로 대성공한 곡은 아니지 싶으니, 저작권 때문에 고소당할 확률도 그만큼 낮다고 예상된다. 어쨌든 그 당시에 AFKN 라디오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주말에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이 되면 재즈 전문 프로그램이 편성되었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엑스트라 무시카'라는 라틴 음악 전문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때만해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경로는 흔치않았기 때문에, 라기 보다 전무하다시피했기 때문에, 나름 굉장히 소중한 프로그램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재즈 프로그램은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Ken Dorn's all about jazz'라는 식의 타이틀이었던 것 같은데... 잘 생각해보니 켄돈은 화가 이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전혀 확신은 없다.
어쩄든 방송시간이 저녁 7시부터 8시쯤이었지 싶은데, 내가 이 노래를 들었던 시간에는 붉은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꼭 지금같은 후덥지근한 여름날씨였는데, 내 방은 북향인데다가, 창문도 작아서 정말이지 핫한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고, 아마도 침대에서 시덥잖은 소설이나 읽고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러브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당시에 러브와는 3만광년쯤 떨어져 지내던 나조차 왠지 bitter sweet한 감정에 불현듯 휩싸였다. 후덥지근하고 땀냄새나는 방안에 흡사 있지도 않은 에어컨을 튼 것처럼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고 지나가는 느낌. 그리고 Don't Blame Me라는 가사도, 왠지 왕따에다가 뚱뚱이였던 고딩에겐 뭔가 전혀 다른 의미로 와닿기도 하고... 그런 알쏭달쏭한 감정 속에서 노래를 듣던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볼펜과 메모지를 준비했고, 곧 이어 나올 DJ의 멘트에 집중했다. 노래가 끝나고 잠시동안 여운이 있고나서, "엘에이 보이시즈 앤드 수퍼 삭스, 돈 블레임 미"라는 곡 설명이 있었고, 잽싸게 종이에 받아 적었지만, 그보다 더 뚜렷하게 머릿속에 기억의 메모가 적혔지 싶다.
그때만해도 아직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당장은 어떻게 노래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몇해가 지나고 마침내 인터넷의 시대가 왔고, 냅스터가 나오고, AMG도 있고, 아마존도 있고 뭐 이런 시대가 오니까,
당연히 이 노래가 수록된 음반도 알게 되었고, 맘만 먹으면 아마존을 통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 주문한 적도 없고, 귀찮아서 그렇게까진 못했고, 막연히 다운을 받아야지, 하다가 글쎄 그것도 잘 안 되었었는지,
최근까지 그냥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에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일이 몇번 있었는데, 그 때 생각난 김에 이 노래도 찾아봐야지 했던게,
한참 걸려서 이제야 다운로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말이지 20년 가까운 세월을 넘어,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는데, 물론 느낌은 많이 다르다.
예쩐에 처음 들었을 때에는, 좀 더 서라운드한 느낌이었고, 눈을 감으면 마치 튜브를 타고 풀장을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생각보다 평이하고 건조한 느낌이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여러번 재구성되어서 상상속의 CD플레이어를 통해 재생이 되다보니, 굉장히 이상적인 노래로 자리매겨져 있었나 보다. 어쨌든, 지금 들어도 나쁘지 않다. 20년이 흐르는 사이에 Sarah Vaughn이 부른 버전, Toots Thieleman이 연주한 버전, 등 훌륭한 버전을 많이 들었지만 그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지금 들어도, 낮과 밤의 불분명한 경계의 시간에, 얼굴에 가면을 쓰는 순간, 또는 화장을 지우고 맨얼굴로 돌아오는 순간에, 방금 내린 결정이 후회되는 순간에, 헤어지고 돌아 선 후에 왠지 걱정이 되는 순간에 머리속에 떠오르던 멜로디와 감정이 그대로 다시 되살아난다.
L.A에 한번도 가 본적은 없지만, 왠지 갖고 있는 이미지(주로 흥청망청에 인공적이고, 머리 나쁜 이미지인데)는 별로 좋지 않다.
그런 이미지가 있는 고장에 어김없이 딸려있는, 으슥한 뒷골목이나 흥청망청을 짊어지고 있는, 가난하고 고단함이 무겁게 내리깔려 있는 어느 주택가.
지금도 저녁노을 무렵에 턴테이블에서 지지직 소리를 내며 이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을 것만 같다.
자료실에 상습적으로 올린 헤비업로더들이 대상이라는데.
거의 다 중고등학생이지 싶은데 뜨끔한 놈들 많겠네.
나도 여기에다가 음원을(음질을 많이 떨어뜨리긴 하지만) 올리곤 하니까 완전 남일같지는 않다.
물론 놈들은 모종의 이익을 노리고 하는 짓들이고, 나는 그냥 취미로 하는 차이는 있지만.
예전에는 음악잡지나, 평론가들이 써놓은 글이나, 음악차트, 라디오를 듣고 음악에 대한 정보를 얻고 구입을 하거나, CD가게에서 재킷을 보고 구입을 하는 식이였다.
그리고 그걸 가지고 기껏해야 친구들한테 '야 이거 한번 들어봐 죽여준다' 는 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블로그가 생겨서 사적인 음악평이나 소감을 올리곤 하게 되었는데, 이젠 기술적으로 그 음악 자체를
올려서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들은 소감이 이렇네, 이 아티스트는 음악적 원류가 이렇네, 하는 얘기는 음원을 들려 주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우회적이고,
부수적이다. 물론 그 자체에도 다른 매력은 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음원을 올리는 이유는, 그 음악을 들었을 때 만들어지는 공간감을 공유하고 싶어서이다.
이 노래는 내가 고등학생 때 AFKN에서 들었던 곡이다. 그리 상업적으로 대성공한 곡은 아니지 싶으니, 저작권 때문에 고소당할 확률도 그만큼 낮다고 예상된다. 어쨌든 그 당시에 AFKN 라디오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주말에 그러니까 토요일 저녁이 되면 재즈 전문 프로그램이 편성되었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이 끝나면 '엑스트라 무시카'라는 라틴 음악 전문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때만해도 우리나라에서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경로는 흔치않았기 때문에, 라기 보다 전무하다시피했기 때문에, 나름 굉장히 소중한 프로그램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재즈 프로그램은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Ken Dorn's all about jazz'라는 식의 타이틀이었던 것 같은데... 잘 생각해보니 켄돈은 화가 이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전혀 확신은 없다.
어쩄든 방송시간이 저녁 7시부터 8시쯤이었지 싶은데, 내가 이 노래를 들었던 시간에는 붉은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꼭 지금같은 후덥지근한 여름날씨였는데, 내 방은 북향인데다가, 창문도 작아서 정말이지 핫한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고, 아마도 침대에서 시덥잖은 소설이나 읽고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런데 이 러브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당시에 러브와는 3만광년쯤 떨어져 지내던 나조차 왠지 bitter sweet한 감정에 불현듯 휩싸였다. 후덥지근하고 땀냄새나는 방안에 흡사 있지도 않은 에어컨을 튼 것처럼 한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고 지나가는 느낌. 그리고 Don't Blame Me라는 가사도, 왠지 왕따에다가 뚱뚱이였던 고딩에겐 뭔가 전혀 다른 의미로 와닿기도 하고... 그런 알쏭달쏭한 감정 속에서 노래를 듣던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볼펜과 메모지를 준비했고, 곧 이어 나올 DJ의 멘트에 집중했다. 노래가 끝나고 잠시동안 여운이 있고나서, "엘에이 보이시즈 앤드 수퍼 삭스, 돈 블레임 미"라는 곡 설명이 있었고, 잽싸게 종이에 받아 적었지만, 그보다 더 뚜렷하게 머릿속에 기억의 메모가 적혔지 싶다.
그때만해도 아직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당장은 어떻게 노래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
몇해가 지나고 마침내 인터넷의 시대가 왔고, 냅스터가 나오고, AMG도 있고, 아마존도 있고 뭐 이런 시대가 오니까,
당연히 이 노래가 수록된 음반도 알게 되었고, 맘만 먹으면 아마존을 통해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 주문한 적도 없고, 귀찮아서 그렇게까진 못했고, 막연히 다운을 받아야지, 하다가 글쎄 그것도 잘 안 되었었는지,
최근까지 그냥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요즘에 영화를 다운받아 보는 일이 몇번 있었는데, 그 때 생각난 김에 이 노래도 찾아봐야지 했던게,
한참 걸려서 이제야 다운로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말이지 20년 가까운 세월을 넘어,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는데, 물론 느낌은 많이 다르다.
예쩐에 처음 들었을 때에는, 좀 더 서라운드한 느낌이었고, 눈을 감으면 마치 튜브를 타고 풀장을 부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들으니, 생각보다 평이하고 건조한 느낌이다.
아마도 머릿속에서 여러번 재구성되어서 상상속의 CD플레이어를 통해 재생이 되다보니, 굉장히 이상적인 노래로 자리매겨져 있었나 보다. 어쨌든, 지금 들어도 나쁘지 않다. 20년이 흐르는 사이에 Sarah Vaughn이 부른 버전, Toots Thieleman이 연주한 버전, 등 훌륭한 버전을 많이 들었지만 그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지금 들어도, 낮과 밤의 불분명한 경계의 시간에, 얼굴에 가면을 쓰는 순간, 또는 화장을 지우고 맨얼굴로 돌아오는 순간에, 방금 내린 결정이 후회되는 순간에, 헤어지고 돌아 선 후에 왠지 걱정이 되는 순간에 머리속에 떠오르던 멜로디와 감정이 그대로 다시 되살아난다.
L.A에 한번도 가 본적은 없지만, 왠지 갖고 있는 이미지(주로 흥청망청에 인공적이고, 머리 나쁜 이미지인데)는 별로 좋지 않다.
그런 이미지가 있는 고장에 어김없이 딸려있는, 으슥한 뒷골목이나 흥청망청을 짊어지고 있는, 가난하고 고단함이 무겁게 내리깔려 있는 어느 주택가.
지금도 저녁노을 무렵에 턴테이블에서 지지직 소리를 내며 이 노래가 흘러 나오고 있을 것만 같다.
# by | 2009/08/16 12:36 | 음악_샀거나 또는 불법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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